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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이 책은 ‘『조선유학의 교육철학사상 변주』Ⅰ−성리학의 확장과 심화−’에 이어 17세기 중・후반 이후 20세기 초반까지 조선유학이 지닌 교육철학 사상의 몇몇 특징을 조명한 것이다.
Ⅰ권의 경우, 17세기 초반까지 ‘주자학을 계승하고 부분적으로 확대 해석’하여 독창성을 드러낸 학자들의 교육철학사상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조선사회의 교육은 성리학 도입 이후 임진왜란 직후까지 주자학의 영향이 막강하였다. 주자학에서 결코 벗어나서는 안 되는, ‘성리학의 계승적 확장・심화’를 추구하던 시기였다.
Ⅱ권은 이와 다른 방향의 유학교육이 제기되던 시기의 교육철학사상이다. Ⅰ권의 ‘연속’이자 ‘자매’편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이후 18세기 무렵부터 조선의 지성들은 ‘주자학에 대한 반성과 회의’를 갖기 시작하였다. 특히, 중국에 청(淸)나라가 건국되고, 그 문명이 유입되면서 시대정신에 대한 고민도 커져갔다. 이 책은 그런 문제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정돈 방식은 Ⅰ권과 유사하다.
여기에서도 교육철학사상에 의미를 부여할 만한 유학자 9명을 선정하여, 사유의 변주를 들어 보았다.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고초를 겪었던 백호 윤휴(白湖 尹鑴, 1617∼1680)를 비롯하여, 서계 박세당(西溪 朴世堂, 1629∼1703), 농암 김창협(農巖 金昌協, 1651∼1708), 초정 박제가(楚亭 朴齊家, 1750∼1805), 정조 이산(正祖 李祘, 1752∼1800)과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 호산 박문호(壺山 朴文鎬, 1846∼1918), 백암 박은식(白巖 朴殷植, 1859∼1925) 등이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교육사상사에서 크게 다루어지지 않은 유학자이다. 백호의 경우, 그의 『대학』 해석에 기초하여 교육철학을 검토하였고, 서계는 『사변록(思辨錄)』 가운데 『중용』을 이해하는 방식을 통해 교육사상을 점검하였다. 농암은 학문의 독득한 수용 방식과 지각(知覺)에 대한 견해를 살펴보았고, 초정에게서는 인간의 지향과 교육정신을 살펴보았다. 정조와 다산은 인간의 본분과 연관하여 효(孝)의 교육철학을 조명하였다. 추사의 경우에는 서예나 고증학에서 벗어나 유학자로서의 교육철학사상을 구명하였는데, 교육의 과정과 인재의 문제, 실사구시의 교육관 등을 검토하였다. 호산은 조선 후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주자학의 주석에 충실한 학자였기에 그에 담긴 교육철학을 구명했고, 백암은 개화기 유학의 교육적 변모를 엿볼 수 있는 사유를 전개하였기에, 이를 분석하며 교육철학사상을 확인하였다.
Ⅰ권에 대비해 볼 때, 성리학적 교육철학사상이 지닌 연속성과 단절성을 확인하면서, 여러 유학자가 강조한 교육적 특징을 검토하면, 조선유학의 교육철학사상 변주가 다양한 양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 여기에서 다루지 못한 조선 후기의 유학자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그동안 교육학계에서 상대적으로 적게 다룬 사상가들의 사유를 통해 조선유학을 새롭게 이해하고, 교육철학사상의 인식이 이어지기를 희구한다.
입동(立冬) 무렵.
신창호
이 책은 ‘『조선유학의 교육철학사상 변주』Ⅰ−성리학의 확장과 심화−’에 이어 17세기 중・후반 이후 20세기 초반까지 조선유학이 지닌 교육철학 사상의 몇몇 특징을 조명한 것이다.
Ⅰ권의 경우, 17세기 초반까지 ‘주자학을 계승하고 부분적으로 확대 해석’하여 독창성을 드러낸 학자들의 교육철학사상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조선사회의 교육은 성리학 도입 이후 임진왜란 직후까지 주자학의 영향이 막강하였다. 주자학에서 결코 벗어나서는 안 되는, ‘성리학의 계승적 확장・심화’를 추구하던 시기였다.
Ⅱ권은 이와 다른 방향의 유학교육이 제기되던 시기의 교육철학사상이다. Ⅰ권의 ‘연속’이자 ‘자매’편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이후 18세기 무렵부터 조선의 지성들은 ‘주자학에 대한 반성과 회의’를 갖기 시작하였다. 특히, 중국에 청(淸)나라가 건국되고, 그 문명이 유입되면서 시대정신에 대한 고민도 커져갔다. 이 책은 그런 문제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정돈 방식은 Ⅰ권과 유사하다.
여기에서도 교육철학사상에 의미를 부여할 만한 유학자 9명을 선정하여, 사유의 변주를 들어 보았다.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고초를 겪었던 백호 윤휴(白湖 尹鑴, 1617∼1680)를 비롯하여, 서계 박세당(西溪 朴世堂, 1629∼1703), 농암 김창협(農巖 金昌協, 1651∼1708), 초정 박제가(楚亭 朴齊家, 1750∼1805), 정조 이산(正祖 李祘, 1752∼1800)과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 호산 박문호(壺山 朴文鎬, 1846∼1918), 백암 박은식(白巖 朴殷植, 1859∼1925) 등이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교육사상사에서 크게 다루어지지 않은 유학자이다. 백호의 경우, 그의 『대학』 해석에 기초하여 교육철학을 검토하였고, 서계는 『사변록(思辨錄)』 가운데 『중용』을 이해하는 방식을 통해 교육사상을 점검하였다. 농암은 학문의 독득한 수용 방식과 지각(知覺)에 대한 견해를 살펴보았고, 초정에게서는 인간의 지향과 교육정신을 살펴보았다. 정조와 다산은 인간의 본분과 연관하여 효(孝)의 교육철학을 조명하였다. 추사의 경우에는 서예나 고증학에서 벗어나 유학자로서의 교육철학사상을 구명하였는데, 교육의 과정과 인재의 문제, 실사구시의 교육관 등을 검토하였다. 호산은 조선 후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주자학의 주석에 충실한 학자였기에 그에 담긴 교육철학을 구명했고, 백암은 개화기 유학의 교육적 변모를 엿볼 수 있는 사유를 전개하였기에, 이를 분석하며 교육철학사상을 확인하였다.
Ⅰ권에 대비해 볼 때, 성리학적 교육철학사상이 지닌 연속성과 단절성을 확인하면서, 여러 유학자가 강조한 교육적 특징을 검토하면, 조선유학의 교육철학사상 변주가 다양한 양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 여기에서 다루지 못한 조선 후기의 유학자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그동안 교육학계에서 상대적으로 적게 다룬 사상가들의 사유를 통해 조선유학을 새롭게 이해하고, 교육철학사상의 인식이 이어지기를 희구한다.
입동(立冬) 무렵.
신창호
- 出版地 : 韓國
- 語言 : 其他語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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