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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활동의 고고학적 기원과 전개 海上活動之考古學起源與發展
作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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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版日期
:
2016/02/29
閱讀格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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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
ISBN
:
9788949911946
머리말
고고학은 과거 사람들이 남긴 물질자료를 통해서 그들의 생활상과 문화, 그리고 역사를 설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 대부분은 발굴과 지표조사를 통해서 육지에서 이루어진 사람의 활동을 설명한다. 그러한 고고학이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사람의 활동을 설명하는 데에 일정한 한계가 있다.
선사시대의 경우 바닷가에 위치한 유적에서 발견되는 해양동물의 유체(遺體)와 어로 도구 같은 자료를 토대로 접근한 것이 있을 뿐으로, 이를 근거로 당시 사람들의 어로생활이 설명된다. 고대와 중세에 들어와 바다에 난파된 배에 대한 수중고고학의 발굴조사를 통하여 선박의 구조와 항해술, 그리고 해상무역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논의된 바 있다. 패총과 난파선을 대상으로 한 연구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는 총체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접근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고고학 자료로써 사람의 해상활동을 설명하는 경우 그 대부분 문헌기록이나 구전(口傳)을 통해서 알려진 내용과 조합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문헌기록과 고고학 자료를 조합한 접근은 고고학자가 아닌 고대사학자들이 지금까지 주도하여 왔다. 최근에 들어서서 해상활동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는 다른 분야와의 학제간(學際間) 협력을 도모하면서, 나름대로 그 연구대상과 방법이 세계 전 지역에 걸쳐서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맥도날드 고고학연구소에서 2007년에 개최되고 2010년에 그 성과가 출판된 <세계 해상활동의 기원과 그 전개>라는 주제의 학술대회를 살펴보면, 선박 건조와 항해기술, 조류, 바람 등과 관련된 해양환경, 주민 집단의 이동과 정주, 교역과 전쟁, 그리고 도서지역의 사회 발
전 등등과 관련한 세부주제를 제시하고 있다. 전 세계 각 지역에 걸쳐 다양하게 설명되면서도 이들을 서로 엮는 학문적 체계를 정립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모색하는 모습을 살필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총체적인 접근은 많은 학문적 노력과 경험이 필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수중 환경에서의 고고학 연구조사의 방법에도 정통해야함은 물론이거니와, 생물유체나 해양지질 등에 대한 자연과학적 지식, 그리고 어로방법에 대한 민족지(民族誌)는 물론 무엇보다도 선박의 제작과 항해기술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지 않으면 어려운 작업이다. 더 나아가 선적된 많은 유물, 특히 아시아와 유럽 지역의 고대 중세 난파선의 경우 도자기와 화폐에 대한 조예가 없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므로 각 분야에 대해 정통한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해양고고학과 관련하여 일정한 수준 이상의 성과를 내기 어렵다 하겠다. 더군다나 원거리 해상활동은 다수의 국가와 지역이 연계되어 있으므로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절대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식견(識見)이 충분하지 않은 필자가 단독으로 이에 대한 소개를 시도한 것은 무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용기를 내어 일반인들은 물론 무엇보다도 육상의 고고학자들이 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할 목적으로 이 글을 준비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산발적으로 이루어진 해양고고학 관련 조사연구 성과를 초보적이나마 인근 중국과 일본은 물론
세계의 다른 지역의 사례와 간헐적으로 비교하면서 묶어 정리하고자 한 것이다.
한반도와 그 주변을 둘러싸고 이루어진 해상활동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해서 고고학적 맥락에서 정리하면, 크게 식량자원을 획득하는 어로경제, 외래 물자와 기술 정보의 유통, 교통 수단으로써 선박의 제작과 구조, 그리고 바다로 둘러싸인 도서지역의 사회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어로경제 활동에 관련해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어로도구, 식량자원에 대한 연구가 기본을 이룬다. 후자는 대개의 경우 해안도서 지역에 형성된 패총의 발굴을 통해서 획득된 동물자원의 동정(同正)에 대한 연구가 기초를 이룬다. 어로활동은 바다에 서식하는 생물을 획득하는 작업으로서 해수(海獸)나 대형 어족일 경우와 소형의 어류일 경우 동원되는 기술은 각기 다르다. 무엇보다도 도구가 다르며, 이에 대해서는 다른 주제보다 고고학적인 조사를 통해서 쉽게 접근될 수 있다.
그러한 어로활동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기술이 지속 발전하여 왔는데, 지금까지 고고학 자료를 통해서 보다 중점 두어 설명하는 것은 그 초기 단계인 신석기시대이다. 동 시대에 농경을 통해서 획득되는 식량자원이 많지 않고 상당부분 어로자원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앞서도 지적하였다시피 이에 대해서는 생물유체와 어로도구를 통해서 설명되고 있지만, 울산 반구대의 사례로 대표되듯이 고래 등의 해양서식 동물과 이를 포획하는 데에 동원되는 선박 등이 표현된 암각화를 통해서도 접근될 수 있는 것이다.
한반도와 부속도서의 원시고대 주민의 해상이동은 크게 그 이동거리에 따라서 근거리와 원거리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대체로 절대적 거리를 따져서 구분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해상루트 상에서 출발지와 목적지 또는 경유지가 육안으로 관찰되는지 혹은 징검다리가 있는지 여부가 또한 중요한 기준일 수도 있겠다. 단순히 거리로 따질 경우 대체로 50~60km가 그 경계가 될 수 있는데, 그것은 한낮에 이동할 수 있는 최대
거리인 것이다. 여하튼 절대거리를 기준으로 할 경우 원거리는 서해를 통한 중원지역, 동해를 통한 울릉도, 남해를 통한 제주도와 오키나와, 그리고 대한해협을 통한 일본 규슈지역과의 이동거리를 들 수 있다. 근거리는 물론 한반도 근해의 해안 또는 도서간의 이동거리가 해당된다.
이처럼 이동거리와 관련해서 설명할 경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6천년 이전 신석기시대 초기 혹은 구석기시대의 해상 환경에 대한 이해이다. 잘 알려지다시피 이 시대는 플라이스토세 후기와 홀로세 초기로서 추운 기후에 빙하가 발달하거나 해빙하기 시작하는 무렵으로서 해수면이 지금보다 낮아 해상거리가 훨씬 좁거나 연륙(連陸)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당대 해상거리가 지금보다 짧은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해상이동을 살피기 위해서는 출발지와 도착지에서 발견되는 상호 유사한 유물을 살피는 것이 그 토대가 된다. 신석기시대의 경우 석기와 토기가 그 증거로 제시되지만, 청동기시대 이후에는 금속유물이 제시되기도 한다. 이들 유물은 원산지, 제작지가 소비지와 각각 다를 수도 있는데, 후자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구신석기시대의 경우 특히 흑요석과 관련해서 세계 전 지역에서 그 원산지를 추적하여 동 시기부터 해상이동의 증거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고대 이후가 되면 그러한 해상이동과 관련된 제품으로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그 제작기술의 특이성과 난이도 때문에 제작지가 비교적 명확하게 알려진 도자기이다. 특히 중세에 이르면 대규모로 선적하고, 그에 담긴 내용물이 받는 사람의 이름과 연대가 적힌 명문(銘文) 자료와 함께 발견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 그 유통과 관련한 도자무역 연구에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선사시대와 달라서 그 구체적인 내용이 문헌기록을 통하여 설명될 수 있다.
한편 바다를 건너 주민의 이주와 정착이 이루어지는 경우 그들의 주거가옥이나 무덤 양식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례도 있다. 그
것은 주거와 무덤의 양식이 일정집단마다 전통적으로 유지된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단순 모방의 사례도 전혀 없지 않음을 주의해야 하는 바, 백제 무령왕릉의 무덤양식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항해를 함에 필요한 수단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선박이다. 선박에 대해서 고고학적으로 발굴조사되어 그 실물이 알려진 가장 많은 사례는 한반도 서해안 해역에 침몰된 13~14세기의 고려시대 난파선이다. 이 자료를 통하여 연안항로를 따라 운행한 내국 교역선은 물론 중국과 일본을 왕래한 외국 무역선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바다속의 난파선을 조사하는 이른바 수중고고학의 발굴 성과는 적지 않게 축적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 다 아는 바처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주도하고 있는데, 그 성과를 신속하고도 꾸준하게 소개하고 있어 이 글을 준비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해양선박 실물자료로서 최근에 신석기시대의 통나무배 사례도 있으므로 이에 대해서도 소개하고자 한다. 청동기시대부터 역사시대 초기에 이르는 고대의 선박이 발굴된 사례는 전세계적으로 적지 않으며, 이웃 중국과 일본에서도 다수의 사례가 있다. 삼국시대에 들어서서는 당시 실물을 모방한 토제품(土製品)이 또한 다수 출토된 바 있어 이를 통하여 간접적으로나마 당시의 선박 모양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중국과 일본에서도 고대의 토제 모형품의 사례가 다수 출토하여 상호 비교가 가능한 바, 초보적이나마 이와 관련해서도 설명하고자 한다.
풍력을 이용한 범선의 등장은 전 세계적으로 해상이동 수단의 혁신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에서 다수가 발굴된 12~14세기의 난파선도 그 대부분이 범선으로서 세부적인 배의 구조는 선박의 용도와 해상지리의 환경에 따라 다른 바, 실물 사례를 중심으로 그 구조를 살펴보고자 한다. 선박의 항해와 관련해서 중요한 고고학적 시설 유구(遺構)는 당대 포구 시설과 제사 유적이다. 최근에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해당하는 사례가 서해안
과 제주도 등지에서 발굴조사된 바 있으므로 이를 간략하게나마 살필 것이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한반도로 이어지는 해상루트 한 가운데에 오키노시마[冲ノ島] 섬이 있어 고대의 오랜 기간 항해 안전을 위한 제사가 이루어졌는 바, 이에 대해서도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해양에 둘러싸여 해상의 교류와 활동이 지역문화와 사회의 발전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도서지역에 대해서는 관계적 위치, 그 크기와 자연환경 등과 주민들과의 관계를 주제로 한 학제간의 연구가 서구에서는 활발하다. 단순공동체로부터 문명국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도서 사회의 대외 교류활동과 사회적 관계에 대한 설명이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지중해의 크레타 섬이나 사이프러스와 같은 문명 중심지역 도서, 남서태평양의 통가나 하와이에서 확인되는 족장사회단계의 도서, 알류산열도 근처에서 해상동물의 포획을 통해서 꾸려나가는 단순사회의 도서 등 각기 다른 입지와 규모의 도서사회에 대한 설명이 바로 그것이다.
한반도연안에서는 해안에 인접하고 신석기시대부터 일정규모 이상의 인구집단이 거주한 도서가 많이 있지만, 고고학적으로 체계적인 설명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고대사회에 소국 수준의 형성과 발전을 고고학적으로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사례가 울릉도와 제주도인 것이다. 두 섬은 그 입지상 해상루트의 중간지점으로서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하다. 얼핏 보면 전자는 동해의 한가운데 후자는 동중국해상의 한가운데에 있어 교역거점으로서 기능할 것처럼 이해되지만, 그러나 인접하거나 중계하는 대륙과의 지리적 관계가 그러한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인접한 해상에 있으면서 해상루트의 한가운데에 징검다리 역할을 도서로서 오키나와가 있다. 이들 세 섬의 사례를 중심으로 하여 도서지역에서의 사회발전 과정과 대외교류를 고고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해상활동 각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그 무대인 한반도를 둘러싼
해양환경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한반도 3면으로 그 활동의 거점이 되는 해안과 도서지역의 자연환경을 살필 것이다. 또한 우리와 다른 문화권인 중국 대륙, 일본열도와의 원거리 항해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지리적 환경을 살피고자 한다. 또한 선사시대의 경우 플라이스토세에 지금보다 훨씬 추워 해수면이 지금보다 100m 이하로 내려가 3면의 바다 상당 부분이 육지일 경우가 있는 등 지금과 해양환경이 전혀 달라, 이를 무대로 한 인간의 활동 또한 다를 수 밖에 없음을 이해하여야 한다.
원시적인 항해기술로써 장거리 항해가 이루어진 남서태평양, 몬순 계절풍을 이용한 해상무역이 일찍이 발달한 인도양, 많은 섬들이 가시거리(可視距離) 안에 있어 근거리 항해를 통해서 문명사회를 이룩한 에게 해, 고대 해상민족들의 활동으로 널리 알려진 북유럽 해 등등, 각기 다른 곳의 사례를 제대로 숙지할 때, 한반도를 둘러싼 해상활동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以下為AI翻譯,僅供參考)
前言
考古學旨在透過過去人類留下的物質資料,闡釋他們的生活樣貌、文化與歷史。其中大部分是透過發掘和地表調查,來解釋陸地上的人類活動。然而,這樣的考古學在解釋海上人類活動方面,存在一定的局限。
在史前時代,僅能透過位於海岸遺址中發現的海洋動物遺骸和漁撈工具等資料進行探討,並以此為基礎來解釋當時人們的漁撈生活。進入古代與中世紀後,透過對海上沉船的水下考古發掘調查,人們曾集中討論船舶構造、航海技術和海上貿易。除了針對貝塚和沉船的研究之外,其他領域尚未能進行全面而系統的探討。
因此,若要以考古學資料來解釋人類的海上活動,其中大部分內容只能與文獻記載或口耳相傳的內容相結合。這種結合文獻記載和考古學資料的途徑,至今為止一直由古代史學家而非考古學家主導。近來,關於海上活動的考古學研究,在尋求與其他領域的跨學科合作的同時,要求其研究對象和方法應在全球範圍內建立系統的呼聲也越來越高。
例如,2007年英國劍橋大學麥克唐納考古學研究所舉辦、並於2010年出版成果的題為《世界海上活動的起源與發展》的學術會議,便提出了與船舶建造與航海技術、潮流、風向等海洋環境、居民群體的遷徙與定居、貿易與戰爭,以及島嶼地區的社會發展等相關的細分主題。會議展示了在全球各個地區進行多元化闡釋的同時,也努力探索建立將這些研究連結起來的學術體系。
這種全面的方法,無庸置疑需要大量的學術努力與經驗。不僅要精通水下環境下的考古研究調查方法,更需要具備生物遺骸或海洋地質等自然科學知識,以及漁撈方法的民族誌,尤其是在對船舶製造和航海技術沒有充分了解的情況下,這將是一項艱鉅的任務。更進一步來說,對於裝載的眾多遺物,特別是亞洲和歐洲地區的古代中世紀沉船中發現的陶瓷器和貨幣,如果沒有深入的造詣,將更加困難。因此,如果沒有精通各領域的研究者共同參與,海洋考古學很難取得一定水準以上的成果。更何況遠距離海上活動涉及多個國家和地區,國際網絡是絕對必要的。
因此,學識不足的筆者單獨嘗試介紹此類內容,實屬力有未逮。即便如此,筆者仍鼓起勇氣撰寫此文,目的不僅是為了一般大眾,更是為了讓陸上考古學家對此產生興趣。筆者旨在將韓國迄今為止零星進行的海洋考古學相關調查研究成果,初步地與鄰近中國、日本乃至世界其他地區的案例進行間歇性比較,並加以整理歸納。
若將圍繞韓半島及其周邊地區進行的海上活動,從考古學的脈絡中整理出可以闡釋的主題,大致可分為獲取糧食資源的漁撈經濟、外來物資與技術資訊的流通、作為交通工具的船舶製造與構造,以及環海島嶼地區的社會等。
首先,關於漁撈經濟活動,在韓國,對漁撈工具和糧食資源的研究是基礎。後者大多以透過海岸島嶼地區貝塚的發掘所獲得的動物資源鑑定研究為基礎。漁撈活動是獲取海中生物的作業,對於海獸或大型魚類與小型魚類,所動用的技術各不相同。最重要的是工具不同,而這方面比其他主題更容易透過考古學調查來切入。
此類漁撈活動至今技術不斷發展,然而,迄今為止透過考古學資料較為側重說明的是其早期階段——新石器時代。這是因為同時期透過農耕獲得的糧食資源不多,很大程度上依賴漁撈資源。正如前文所指出的,這方面雖透過生物遺骸和漁撈工具進行說明,但正如蔚山盤龜臺的案例所代表,亦可透過描繪鯨魚等海洋棲息動物以及捕捉牠們所使用的船隻等內容的岩刻畫來加以探討。
韓半島及其附屬島嶼的原始古代居民海上移動,大致可依其移動距離,分為近距離與遠距離等。一般而言,除了可以根據絕對距離來劃分,另一方面,海上航線上起點與目的地或中繼點是否肉眼可見,或是是否存在跳板島嶼,也可能是重要的判斷標準。若單純以距離來計算,大致上50~60公里可能是一個界限,這是白天移動所能達到的最遠距離。無論如何,若以絕對距離為基準,遠距離移動可舉例為:經由西海前往中原地區、經由東海前往鬱陵島、經由南海前往濟州島與沖繩,以及經由大韓海峽前往日本九州地區。近距離移動當然是指韓半島近海的海岸或島嶼之間的移動距離。
這樣一來,在解釋與移動距離相關的問題時,最重要的是了解距今六千多年前的新石器時代早期或舊石器時代的海上環境。眾所周知,這個時代是更新世晚期和全新世早期,氣候寒冷,冰川發達或開始融化,海平面比現在低,海上距離因此狹窄得多,甚至許多地方與陸地相連。因此,我們必須注意到當時的海上距離比現在短的事實。
為了探究海上移動,檢視起點與終點發現的相互類似遺物是其基礎。在新石器時代,石器和陶器被作為證據提出,但青銅器時代以後,金屬遺物也可能被提出。這些遺物的原產地、製作地可能與消費地各自不同,後者的情況更是如此。在新石器時代,特別是關於黑曜石,全世界許多地區都追溯其原產地,並將其作為同時期海上移動的證據,韓國也不例外。
進入古代以後,作為此類海上移動相關產品,特別引人注目的是陶瓷器,由於其製作技術的特殊性和難度,製作地較為明確。尤其到了中世紀,大量陶瓷器被裝載運輸,其中不少還附有記載收件人姓名和年代的銘文資料,為陶瓷貿易研究提供了豐富的資訊。此外,與史前時代不同,其具體內容可透過文獻記載加以闡釋。
另一方面,當居民跨海移居並定居時,有時也可以透過他們的居住房屋或墓葬形式來間接解釋。這基於居住和墓葬形式在特定群體中傳統上保持不變的事實。然而,我們必須注意,完全模仿的案例並非不存在,百濟武寧王陵的墓葬形式便是最具代表性的例子。
航行所需的工具,無庸置疑是船隻。從考古發掘中,船隻實物被發現最多的案例是沉沒於韓半島西海岸海域的13至14世紀高麗時代沉船。透過這些資料,我們得以清楚了解沿岸航線運行的國內貿易船,以及往返中國和日本的外國貿易船的實貌。在韓國,對海底沉船進行調查,即所謂水下考古學的發掘成果已累積不少。正如眾所周知,這項工作由「國立海洋文化遺產研究所」主導,其成果迅速而持續地被介紹,對筆者撰寫此文幫助甚大。
近期亦有新石器時代獨木舟的實物資料,因此也將一併介紹。從青銅器時代到歷史時代初期,全球範圍內發掘出的古代船舶案例不在少數,鄰近的中國和日本也有許多案例。進入三國時代後,當時模仿實物製作的陶製品也大量出土,透過這些陶製品,我們得以間接了解當時船舶的形狀。此外,中國和日本也出土了許多古代陶製模型,可供相互比較,因此本書將初步對此進行說明。
風帆船的出現被全球公認為海上移動手段的革新。在韓國發掘出的大部分12至14世紀沉船也都是風帆船,其船隻的細部構造因船隻用途和海上地理環境而異,本書將以實物案例為中心,探討其構造。與船舶航海相關的重要考古學遺址是當時的港口設施和祭祀遺址。近期在西海岸和濟州島等地發掘出屬於三國時代和統一新羅時代的案例,本書將簡要介紹。在鄰近的日本,沖之島(沖ノ島)位於通往韓半島的海上航線中間,古代長期以來在此進行航海安全祭祀,本書也將簡單介紹。
對於環海島嶼地區,其海上交流與活動直接連結到地區文化與社會發展,在西方,以關係位置、大小與自然環境等與居民的關係為主題的跨學科研究十分活躍。從簡單的社群到文明國家,各種島嶼社會的對外交流活動和社會關係,都透過考古學證據進行闡釋。例如,地中海克里特島或塞浦路斯等文明中心區的島嶼,西南太平洋東加或夏威夷確認為酋長社會階段的島嶼,阿留申群島附近透過捕獲海洋動物維持生計的簡單社會島嶼等,都是對不同位置和規模的島嶼社會的闡釋。
韓半島沿岸雖然有許多鄰近海岸,且自新石器時代起便有一定規模以上人口群體居住的島嶼,但眾所周知,考古學上並未進行系統性的闡釋。在此背景下,鬱陵島和濟州島是考古學上觀察古代社會小國形成和發展的良好範例。這兩個島嶼在地理位置上並未具備海上航線中間點的功能。乍看之下,前者位於東海中央,後者位於東海(東中國海)中央,似乎可以作為貿易據點,但其與鄰近或中繼的大陸的地理關係使其難以發揮此類作用。與此形成鮮明對比的是,位於鄰近海域,並在海上航線中扮演跳板島嶼角色的沖繩。本書將以這三個島嶼的案例為中心,從考古學角度闡釋島嶼地區的社會發展過程和對外交流。
在進入這些海上活動的各論之前,首先正確理解其舞台——環繞韓半島的海洋環境至關重要。我們將首先探討韓半島三面海岸和島嶼地區的自然環境,這些地區是其活動的據點。此外,我們也將探討理解與我們不同文化圈的中國大陸、日本列島之間遠距離航海所需的地理環境。另外,在史前時代,更新世比現在寒冷得多,海平面下降了100多米,三面海域的大部分可能是陸地,海洋環境與現在截然不同,因此我們必須理解,以其為舞台的人類活動也必然會有所不同。
只有充分了解西南太平洋透過原始航海技術實現長距離航行的案例、印度洋利用季風貿易早期發展的案例、愛琴海許多島嶼在可見距離內透過近距離航行建立文明社會的案例、以及因古代航海民族活動而廣為人知的北歐海域等不同地區的案例,才能正確理解環繞韓半島的海上活動。
고고학은 과거 사람들이 남긴 물질자료를 통해서 그들의 생활상과 문화, 그리고 역사를 설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 대부분은 발굴과 지표조사를 통해서 육지에서 이루어진 사람의 활동을 설명한다. 그러한 고고학이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사람의 활동을 설명하는 데에 일정한 한계가 있다.
선사시대의 경우 바닷가에 위치한 유적에서 발견되는 해양동물의 유체(遺體)와 어로 도구 같은 자료를 토대로 접근한 것이 있을 뿐으로, 이를 근거로 당시 사람들의 어로생활이 설명된다. 고대와 중세에 들어와 바다에 난파된 배에 대한 수중고고학의 발굴조사를 통하여 선박의 구조와 항해술, 그리고 해상무역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논의된 바 있다. 패총과 난파선을 대상으로 한 연구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는 총체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접근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고고학 자료로써 사람의 해상활동을 설명하는 경우 그 대부분 문헌기록이나 구전(口傳)을 통해서 알려진 내용과 조합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문헌기록과 고고학 자료를 조합한 접근은 고고학자가 아닌 고대사학자들이 지금까지 주도하여 왔다. 최근에 들어서서 해상활동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는 다른 분야와의 학제간(學際間) 협력을 도모하면서, 나름대로 그 연구대상과 방법이 세계 전 지역에 걸쳐서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맥도날드 고고학연구소에서 2007년에 개최되고 2010년에 그 성과가 출판된 <세계 해상활동의 기원과 그 전개>라는 주제의 학술대회를 살펴보면, 선박 건조와 항해기술, 조류, 바람 등과 관련된 해양환경, 주민 집단의 이동과 정주, 교역과 전쟁, 그리고 도서지역의 사회 발
전 등등과 관련한 세부주제를 제시하고 있다. 전 세계 각 지역에 걸쳐 다양하게 설명되면서도 이들을 서로 엮는 학문적 체계를 정립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모색하는 모습을 살필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총체적인 접근은 많은 학문적 노력과 경험이 필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수중 환경에서의 고고학 연구조사의 방법에도 정통해야함은 물론이거니와, 생물유체나 해양지질 등에 대한 자연과학적 지식, 그리고 어로방법에 대한 민족지(民族誌)는 물론 무엇보다도 선박의 제작과 항해기술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지 않으면 어려운 작업이다. 더 나아가 선적된 많은 유물, 특히 아시아와 유럽 지역의 고대 중세 난파선의 경우 도자기와 화폐에 대한 조예가 없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므로 각 분야에 대해 정통한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해양고고학과 관련하여 일정한 수준 이상의 성과를 내기 어렵다 하겠다. 더군다나 원거리 해상활동은 다수의 국가와 지역이 연계되어 있으므로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절대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식견(識見)이 충분하지 않은 필자가 단독으로 이에 대한 소개를 시도한 것은 무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용기를 내어 일반인들은 물론 무엇보다도 육상의 고고학자들이 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할 목적으로 이 글을 준비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산발적으로 이루어진 해양고고학 관련 조사연구 성과를 초보적이나마 인근 중국과 일본은 물론
세계의 다른 지역의 사례와 간헐적으로 비교하면서 묶어 정리하고자 한 것이다.
한반도와 그 주변을 둘러싸고 이루어진 해상활동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해서 고고학적 맥락에서 정리하면, 크게 식량자원을 획득하는 어로경제, 외래 물자와 기술 정보의 유통, 교통 수단으로써 선박의 제작과 구조, 그리고 바다로 둘러싸인 도서지역의 사회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어로경제 활동에 관련해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어로도구, 식량자원에 대한 연구가 기본을 이룬다. 후자는 대개의 경우 해안도서 지역에 형성된 패총의 발굴을 통해서 획득된 동물자원의 동정(同正)에 대한 연구가 기초를 이룬다. 어로활동은 바다에 서식하는 생물을 획득하는 작업으로서 해수(海獸)나 대형 어족일 경우와 소형의 어류일 경우 동원되는 기술은 각기 다르다. 무엇보다도 도구가 다르며, 이에 대해서는 다른 주제보다 고고학적인 조사를 통해서 쉽게 접근될 수 있다.
그러한 어로활동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기술이 지속 발전하여 왔는데, 지금까지 고고학 자료를 통해서 보다 중점 두어 설명하는 것은 그 초기 단계인 신석기시대이다. 동 시대에 농경을 통해서 획득되는 식량자원이 많지 않고 상당부분 어로자원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앞서도 지적하였다시피 이에 대해서는 생물유체와 어로도구를 통해서 설명되고 있지만, 울산 반구대의 사례로 대표되듯이 고래 등의 해양서식 동물과 이를 포획하는 데에 동원되는 선박 등이 표현된 암각화를 통해서도 접근될 수 있는 것이다.
한반도와 부속도서의 원시고대 주민의 해상이동은 크게 그 이동거리에 따라서 근거리와 원거리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대체로 절대적 거리를 따져서 구분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해상루트 상에서 출발지와 목적지 또는 경유지가 육안으로 관찰되는지 혹은 징검다리가 있는지 여부가 또한 중요한 기준일 수도 있겠다. 단순히 거리로 따질 경우 대체로 50~60km가 그 경계가 될 수 있는데, 그것은 한낮에 이동할 수 있는 최대
거리인 것이다. 여하튼 절대거리를 기준으로 할 경우 원거리는 서해를 통한 중원지역, 동해를 통한 울릉도, 남해를 통한 제주도와 오키나와, 그리고 대한해협을 통한 일본 규슈지역과의 이동거리를 들 수 있다. 근거리는 물론 한반도 근해의 해안 또는 도서간의 이동거리가 해당된다.
이처럼 이동거리와 관련해서 설명할 경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6천년 이전 신석기시대 초기 혹은 구석기시대의 해상 환경에 대한 이해이다. 잘 알려지다시피 이 시대는 플라이스토세 후기와 홀로세 초기로서 추운 기후에 빙하가 발달하거나 해빙하기 시작하는 무렵으로서 해수면이 지금보다 낮아 해상거리가 훨씬 좁거나 연륙(連陸)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당대 해상거리가 지금보다 짧은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해상이동을 살피기 위해서는 출발지와 도착지에서 발견되는 상호 유사한 유물을 살피는 것이 그 토대가 된다. 신석기시대의 경우 석기와 토기가 그 증거로 제시되지만, 청동기시대 이후에는 금속유물이 제시되기도 한다. 이들 유물은 원산지, 제작지가 소비지와 각각 다를 수도 있는데, 후자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구신석기시대의 경우 특히 흑요석과 관련해서 세계 전 지역에서 그 원산지를 추적하여 동 시기부터 해상이동의 증거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고대 이후가 되면 그러한 해상이동과 관련된 제품으로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그 제작기술의 특이성과 난이도 때문에 제작지가 비교적 명확하게 알려진 도자기이다. 특히 중세에 이르면 대규모로 선적하고, 그에 담긴 내용물이 받는 사람의 이름과 연대가 적힌 명문(銘文) 자료와 함께 발견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 그 유통과 관련한 도자무역 연구에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선사시대와 달라서 그 구체적인 내용이 문헌기록을 통하여 설명될 수 있다.
한편 바다를 건너 주민의 이주와 정착이 이루어지는 경우 그들의 주거가옥이나 무덤 양식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례도 있다. 그
것은 주거와 무덤의 양식이 일정집단마다 전통적으로 유지된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단순 모방의 사례도 전혀 없지 않음을 주의해야 하는 바, 백제 무령왕릉의 무덤양식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항해를 함에 필요한 수단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선박이다. 선박에 대해서 고고학적으로 발굴조사되어 그 실물이 알려진 가장 많은 사례는 한반도 서해안 해역에 침몰된 13~14세기의 고려시대 난파선이다. 이 자료를 통하여 연안항로를 따라 운행한 내국 교역선은 물론 중국과 일본을 왕래한 외국 무역선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바다속의 난파선을 조사하는 이른바 수중고고학의 발굴 성과는 적지 않게 축적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 다 아는 바처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주도하고 있는데, 그 성과를 신속하고도 꾸준하게 소개하고 있어 이 글을 준비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해양선박 실물자료로서 최근에 신석기시대의 통나무배 사례도 있으므로 이에 대해서도 소개하고자 한다. 청동기시대부터 역사시대 초기에 이르는 고대의 선박이 발굴된 사례는 전세계적으로 적지 않으며, 이웃 중국과 일본에서도 다수의 사례가 있다. 삼국시대에 들어서서는 당시 실물을 모방한 토제품(土製品)이 또한 다수 출토된 바 있어 이를 통하여 간접적으로나마 당시의 선박 모양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중국과 일본에서도 고대의 토제 모형품의 사례가 다수 출토하여 상호 비교가 가능한 바, 초보적이나마 이와 관련해서도 설명하고자 한다.
풍력을 이용한 범선의 등장은 전 세계적으로 해상이동 수단의 혁신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에서 다수가 발굴된 12~14세기의 난파선도 그 대부분이 범선으로서 세부적인 배의 구조는 선박의 용도와 해상지리의 환경에 따라 다른 바, 실물 사례를 중심으로 그 구조를 살펴보고자 한다. 선박의 항해와 관련해서 중요한 고고학적 시설 유구(遺構)는 당대 포구 시설과 제사 유적이다. 최근에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해당하는 사례가 서해안
과 제주도 등지에서 발굴조사된 바 있으므로 이를 간략하게나마 살필 것이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한반도로 이어지는 해상루트 한 가운데에 오키노시마[冲ノ島] 섬이 있어 고대의 오랜 기간 항해 안전을 위한 제사가 이루어졌는 바, 이에 대해서도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해양에 둘러싸여 해상의 교류와 활동이 지역문화와 사회의 발전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도서지역에 대해서는 관계적 위치, 그 크기와 자연환경 등과 주민들과의 관계를 주제로 한 학제간의 연구가 서구에서는 활발하다. 단순공동체로부터 문명국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도서 사회의 대외 교류활동과 사회적 관계에 대한 설명이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지중해의 크레타 섬이나 사이프러스와 같은 문명 중심지역 도서, 남서태평양의 통가나 하와이에서 확인되는 족장사회단계의 도서, 알류산열도 근처에서 해상동물의 포획을 통해서 꾸려나가는 단순사회의 도서 등 각기 다른 입지와 규모의 도서사회에 대한 설명이 바로 그것이다.
한반도연안에서는 해안에 인접하고 신석기시대부터 일정규모 이상의 인구집단이 거주한 도서가 많이 있지만, 고고학적으로 체계적인 설명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고대사회에 소국 수준의 형성과 발전을 고고학적으로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사례가 울릉도와 제주도인 것이다. 두 섬은 그 입지상 해상루트의 중간지점으로서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하다. 얼핏 보면 전자는 동해의 한가운데 후자는 동중국해상의 한가운데에 있어 교역거점으로서 기능할 것처럼 이해되지만, 그러나 인접하거나 중계하는 대륙과의 지리적 관계가 그러한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인접한 해상에 있으면서 해상루트의 한가운데에 징검다리 역할을 도서로서 오키나와가 있다. 이들 세 섬의 사례를 중심으로 하여 도서지역에서의 사회발전 과정과 대외교류를 고고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해상활동 각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그 무대인 한반도를 둘러싼
해양환경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한반도 3면으로 그 활동의 거점이 되는 해안과 도서지역의 자연환경을 살필 것이다. 또한 우리와 다른 문화권인 중국 대륙, 일본열도와의 원거리 항해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지리적 환경을 살피고자 한다. 또한 선사시대의 경우 플라이스토세에 지금보다 훨씬 추워 해수면이 지금보다 100m 이하로 내려가 3면의 바다 상당 부분이 육지일 경우가 있는 등 지금과 해양환경이 전혀 달라, 이를 무대로 한 인간의 활동 또한 다를 수 밖에 없음을 이해하여야 한다.
원시적인 항해기술로써 장거리 항해가 이루어진 남서태평양, 몬순 계절풍을 이용한 해상무역이 일찍이 발달한 인도양, 많은 섬들이 가시거리(可視距離) 안에 있어 근거리 항해를 통해서 문명사회를 이룩한 에게 해, 고대 해상민족들의 활동으로 널리 알려진 북유럽 해 등등, 각기 다른 곳의 사례를 제대로 숙지할 때, 한반도를 둘러싼 해상활동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以下為AI翻譯,僅供參考)
前言
考古學旨在透過過去人類留下的物質資料,闡釋他們的生活樣貌、文化與歷史。其中大部分是透過發掘和地表調查,來解釋陸地上的人類活動。然而,這樣的考古學在解釋海上人類活動方面,存在一定的局限。
在史前時代,僅能透過位於海岸遺址中發現的海洋動物遺骸和漁撈工具等資料進行探討,並以此為基礎來解釋當時人們的漁撈生活。進入古代與中世紀後,透過對海上沉船的水下考古發掘調查,人們曾集中討論船舶構造、航海技術和海上貿易。除了針對貝塚和沉船的研究之外,其他領域尚未能進行全面而系統的探討。
因此,若要以考古學資料來解釋人類的海上活動,其中大部分內容只能與文獻記載或口耳相傳的內容相結合。這種結合文獻記載和考古學資料的途徑,至今為止一直由古代史學家而非考古學家主導。近來,關於海上活動的考古學研究,在尋求與其他領域的跨學科合作的同時,要求其研究對象和方法應在全球範圍內建立系統的呼聲也越來越高。
例如,2007年英國劍橋大學麥克唐納考古學研究所舉辦、並於2010年出版成果的題為《世界海上活動的起源與發展》的學術會議,便提出了與船舶建造與航海技術、潮流、風向等海洋環境、居民群體的遷徙與定居、貿易與戰爭,以及島嶼地區的社會發展等相關的細分主題。會議展示了在全球各個地區進行多元化闡釋的同時,也努力探索建立將這些研究連結起來的學術體系。
這種全面的方法,無庸置疑需要大量的學術努力與經驗。不僅要精通水下環境下的考古研究調查方法,更需要具備生物遺骸或海洋地質等自然科學知識,以及漁撈方法的民族誌,尤其是在對船舶製造和航海技術沒有充分了解的情況下,這將是一項艱鉅的任務。更進一步來說,對於裝載的眾多遺物,特別是亞洲和歐洲地區的古代中世紀沉船中發現的陶瓷器和貨幣,如果沒有深入的造詣,將更加困難。因此,如果沒有精通各領域的研究者共同參與,海洋考古學很難取得一定水準以上的成果。更何況遠距離海上活動涉及多個國家和地區,國際網絡是絕對必要的。
因此,學識不足的筆者單獨嘗試介紹此類內容,實屬力有未逮。即便如此,筆者仍鼓起勇氣撰寫此文,目的不僅是為了一般大眾,更是為了讓陸上考古學家對此產生興趣。筆者旨在將韓國迄今為止零星進行的海洋考古學相關調查研究成果,初步地與鄰近中國、日本乃至世界其他地區的案例進行間歇性比較,並加以整理歸納。
若將圍繞韓半島及其周邊地區進行的海上活動,從考古學的脈絡中整理出可以闡釋的主題,大致可分為獲取糧食資源的漁撈經濟、外來物資與技術資訊的流通、作為交通工具的船舶製造與構造,以及環海島嶼地區的社會等。
首先,關於漁撈經濟活動,在韓國,對漁撈工具和糧食資源的研究是基礎。後者大多以透過海岸島嶼地區貝塚的發掘所獲得的動物資源鑑定研究為基礎。漁撈活動是獲取海中生物的作業,對於海獸或大型魚類與小型魚類,所動用的技術各不相同。最重要的是工具不同,而這方面比其他主題更容易透過考古學調查來切入。
此類漁撈活動至今技術不斷發展,然而,迄今為止透過考古學資料較為側重說明的是其早期階段——新石器時代。這是因為同時期透過農耕獲得的糧食資源不多,很大程度上依賴漁撈資源。正如前文所指出的,這方面雖透過生物遺骸和漁撈工具進行說明,但正如蔚山盤龜臺的案例所代表,亦可透過描繪鯨魚等海洋棲息動物以及捕捉牠們所使用的船隻等內容的岩刻畫來加以探討。
韓半島及其附屬島嶼的原始古代居民海上移動,大致可依其移動距離,分為近距離與遠距離等。一般而言,除了可以根據絕對距離來劃分,另一方面,海上航線上起點與目的地或中繼點是否肉眼可見,或是是否存在跳板島嶼,也可能是重要的判斷標準。若單純以距離來計算,大致上50~60公里可能是一個界限,這是白天移動所能達到的最遠距離。無論如何,若以絕對距離為基準,遠距離移動可舉例為:經由西海前往中原地區、經由東海前往鬱陵島、經由南海前往濟州島與沖繩,以及經由大韓海峽前往日本九州地區。近距離移動當然是指韓半島近海的海岸或島嶼之間的移動距離。
這樣一來,在解釋與移動距離相關的問題時,最重要的是了解距今六千多年前的新石器時代早期或舊石器時代的海上環境。眾所周知,這個時代是更新世晚期和全新世早期,氣候寒冷,冰川發達或開始融化,海平面比現在低,海上距離因此狹窄得多,甚至許多地方與陸地相連。因此,我們必須注意到當時的海上距離比現在短的事實。
為了探究海上移動,檢視起點與終點發現的相互類似遺物是其基礎。在新石器時代,石器和陶器被作為證據提出,但青銅器時代以後,金屬遺物也可能被提出。這些遺物的原產地、製作地可能與消費地各自不同,後者的情況更是如此。在新石器時代,特別是關於黑曜石,全世界許多地區都追溯其原產地,並將其作為同時期海上移動的證據,韓國也不例外。
進入古代以後,作為此類海上移動相關產品,特別引人注目的是陶瓷器,由於其製作技術的特殊性和難度,製作地較為明確。尤其到了中世紀,大量陶瓷器被裝載運輸,其中不少還附有記載收件人姓名和年代的銘文資料,為陶瓷貿易研究提供了豐富的資訊。此外,與史前時代不同,其具體內容可透過文獻記載加以闡釋。
另一方面,當居民跨海移居並定居時,有時也可以透過他們的居住房屋或墓葬形式來間接解釋。這基於居住和墓葬形式在特定群體中傳統上保持不變的事實。然而,我們必須注意,完全模仿的案例並非不存在,百濟武寧王陵的墓葬形式便是最具代表性的例子。
航行所需的工具,無庸置疑是船隻。從考古發掘中,船隻實物被發現最多的案例是沉沒於韓半島西海岸海域的13至14世紀高麗時代沉船。透過這些資料,我們得以清楚了解沿岸航線運行的國內貿易船,以及往返中國和日本的外國貿易船的實貌。在韓國,對海底沉船進行調查,即所謂水下考古學的發掘成果已累積不少。正如眾所周知,這項工作由「國立海洋文化遺產研究所」主導,其成果迅速而持續地被介紹,對筆者撰寫此文幫助甚大。
近期亦有新石器時代獨木舟的實物資料,因此也將一併介紹。從青銅器時代到歷史時代初期,全球範圍內發掘出的古代船舶案例不在少數,鄰近的中國和日本也有許多案例。進入三國時代後,當時模仿實物製作的陶製品也大量出土,透過這些陶製品,我們得以間接了解當時船舶的形狀。此外,中國和日本也出土了許多古代陶製模型,可供相互比較,因此本書將初步對此進行說明。
風帆船的出現被全球公認為海上移動手段的革新。在韓國發掘出的大部分12至14世紀沉船也都是風帆船,其船隻的細部構造因船隻用途和海上地理環境而異,本書將以實物案例為中心,探討其構造。與船舶航海相關的重要考古學遺址是當時的港口設施和祭祀遺址。近期在西海岸和濟州島等地發掘出屬於三國時代和統一新羅時代的案例,本書將簡要介紹。在鄰近的日本,沖之島(沖ノ島)位於通往韓半島的海上航線中間,古代長期以來在此進行航海安全祭祀,本書也將簡單介紹。
對於環海島嶼地區,其海上交流與活動直接連結到地區文化與社會發展,在西方,以關係位置、大小與自然環境等與居民的關係為主題的跨學科研究十分活躍。從簡單的社群到文明國家,各種島嶼社會的對外交流活動和社會關係,都透過考古學證據進行闡釋。例如,地中海克里特島或塞浦路斯等文明中心區的島嶼,西南太平洋東加或夏威夷確認為酋長社會階段的島嶼,阿留申群島附近透過捕獲海洋動物維持生計的簡單社會島嶼等,都是對不同位置和規模的島嶼社會的闡釋。
韓半島沿岸雖然有許多鄰近海岸,且自新石器時代起便有一定規模以上人口群體居住的島嶼,但眾所周知,考古學上並未進行系統性的闡釋。在此背景下,鬱陵島和濟州島是考古學上觀察古代社會小國形成和發展的良好範例。這兩個島嶼在地理位置上並未具備海上航線中間點的功能。乍看之下,前者位於東海中央,後者位於東海(東中國海)中央,似乎可以作為貿易據點,但其與鄰近或中繼的大陸的地理關係使其難以發揮此類作用。與此形成鮮明對比的是,位於鄰近海域,並在海上航線中扮演跳板島嶼角色的沖繩。本書將以這三個島嶼的案例為中心,從考古學角度闡釋島嶼地區的社會發展過程和對外交流。
在進入這些海上活動的各論之前,首先正確理解其舞台——環繞韓半島的海洋環境至關重要。我們將首先探討韓半島三面海岸和島嶼地區的自然環境,這些地區是其活動的據點。此外,我們也將探討理解與我們不同文化圈的中國大陸、日本列島之間遠距離航海所需的地理環境。另外,在史前時代,更新世比現在寒冷得多,海平面下降了100多米,三面海域的大部分可能是陸地,海洋環境與現在截然不同,因此我們必須理解,以其為舞台的人類活動也必然會有所不同。
只有充分了解西南太平洋透過原始航海技術實現長距離航行的案例、印度洋利用季風貿易早期發展的案例、愛琴海許多島嶼在可見距離內透過近距離航行建立文明社會的案例、以及因古代航海民族活動而廣為人知的北歐海域等不同地區的案例,才能正確理解環繞韓半島的海上活動。
- 出版地 : 韓國
- 語言 : 其他語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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